롯데그룹 창업주 고(故) 신격호 회장이 지난 19일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입니다. 그의 별세 소식과 더불어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도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혼이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법률상으로는 혼인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으나 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내연의 부부관계를 뜻합니다.
사실 재벌가에서 사실혼 관계로 화제가 된 경우는 신격호 회장이 처음이 아닙니다. 많은 재벌들이 자신의 가정에 만족하지 못하고 혼외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죠. 지금까지 알려진 재벌의 혼외 관계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미스 롯데에서 재산 1조 원의 자산가로
1959년생인 서미경은 '서승희'라는 예명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 배우입니다. 그는 아역배우로 활동을 시작해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죠. 그러다 1972년 제1회 미스롯데 선발 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롯데제과 전속모델로 활약했습니다. 미스롯데로 활약한지 10년 만인 1981년 그녀는 유학을 떠난다며 돌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2년 뒤 서미경은 37세 차이의 고 신격호 회장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5년 뒤 신격호 회장은 딸 신유미를 호적에 올렸죠. 서미경과 신유미는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6.8%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 2007년 180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증여받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알려진 재산 규모만 1조 원 안팎이라고 하네요.
2. 뉴저지 싸이녀에서 재단 이사장으로
SK그룹의 회장인 최태원은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녀 노소영과 결혼했습니다. 당시 정재계 거물의 자녀 결혼인 만큼 큰 화제를 낳았으며, 정략결혼이라는 뒷말도 무성했던 것이 사실이죠. 이들의 삐걱거리는 관계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5년 최태원이 한 언론 매체에 편지를 통해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였습니다. 이에 노소영은 최태원에게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6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죠.
최태원과 혼외 관계에 있던 사람은 바로 김희영인데요. 최태원 회장보다 15살 어리며,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가 미술을 전공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뛰어난 미모의 김희영은 10년 전 '뉴저지 싸이녀'라는 별칭으로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를 모으기도 한 인물인데요. 미니홈피 '싸이월드'와 미국 거주 한인 여성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인 '미시유에스에이'에서 자신의 근황을 전하며 '얼짱' 그리고 '몸짱'으로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최태원 회장의 영문 이니셜 T 그리고 김희영 이사장의 영어 이름인 클로이의 C를 따 설립한 티앤씨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3. 재벌과 동거하며 아들 낳은 영화배우 지망생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큰형이자 이병철 삼성그룹 설립자의 장남 고(故) 이맹희도 떠들썩한 혼외 관계가 세상에 알려진 바 있습니다. 이맹희와 박모씨는 1961년 고급 사교장 '외교구락부'에서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요. 당시 20세였던 박모씨는 영화에 출연한 적은 있으나 비중이 미미한 단역이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훤칠한 키에 서구적인 외모로 남성들에게 인기 있었으며 유부남인 이맹희도 그에게 구애한 남성 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이들은 3년 동안 동거를 했고 아들 이재휘를 얻었죠. 그러나 이병철 회장의 반대로 이들은 헤어졌습니다.
이맹희 CJ 명예회장(좌)와 박모씨(우 / 사진 레이디경향)
이후 2006년 친자 확인 소송을 통해 이재휘는 이맹희의 친자로 호적에 오를 수 있었으며 2010년에는 4억 8천만 원의 양육비 소송을 내기도 했는데요. 이 액수는 아들이 출생한 후 만 20세 성년이 되기 전까지 20년 동안 매월 2백만 원으로 산정해 나온 결과였으며 결국 승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2016년 이재휘는 이맹희의 부인, 아들, 장녀, 차남 등을 대상으로 자신의 상속분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패소하며 승소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소송을 포기했습니다.
4. 고아원 보내고 강제 입양까지?
코오롱그룹의 창업주이자 전 국회의원인 고(故) 이원만은 두 명의 여인들과 혼외 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원만은 1977년 서울의 한 요정에서 접대부로 일하던 이미연을 처음 만났으며 이듬해 막내아들을 낳았다고 하는데요. 이때 이원만의 나이는 72세, 그리고 이미연의 나이는 18세였다고 합니다. 이후 이미연은 아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들을 이원만 회장에게 보냈지만 아들은 집에서 일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며 구박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이후 1985년 이원만이 뇌출혈로 쓰러지며 아들은 고아원으로 보내졌죠. 그는 이후 미국으로 입양되었는데요. 1994년 이원만의 별세 후 코오롱 일가에서는 미국의 양부모에게 10만 달러를 양육비로 주는 대신 상속과 관련된 어떠한 권리도 주장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원만 창업주(좌)와 이 창업주의 혼외 딸이라고 주장하는 이정현씨(우)
이원만의 혼외 관계 논란은 또 있었습니다. 바로 2007년 인터넷 블로그에 이원만과 혼외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한 여성과 그녀의 딸이었습니다. 이 여성은 자신이 1969년 이원만 회장의 별장에 놀러 갔으며 이후 이원만과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1970년 이 여성은 딸을 출산했으며, 이 딸이 16세가 되던 해 스웨덴으로 이민을 떠났다고 하네요. 이후 1994년 코오롱 일가에서는 이원만의 별세 후 당시 대학생이던 딸을 불러 현금 1억 원을 주고 일체의 유산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설에 도장을 찍게 했다고 합니다.